우선 이와 관련하여 마침 신간이 있길래 소개합니다. 공저자 중에는 저 유명한 '듀나' 님도 있는데, 이 이름을 보고 굉장히 반가워하실 얼룩커님들도 꽤 있으리라 예상해 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286844

 

악인의 서사 - 교보문고

잊을 만하면 주기적으로 SNS 실시간 트렌드를 점령한 그 키워드! 단행본 지면으로 무대를 옮긴 ‘악인의 서사’ 논쟁 140자의 집단적 독백을 넘어 14,000자의 심층 탐구로

product.kyobobook.co.kr

 

이 책은 현실의 가해자라기보다는 창작물 속에서 다루어지는 가해자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저 악명 높은(?) 《조커》 가 일으켰던 그 논란을 다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원글의 얼룩커님은 현실의 가해자들을 주제로 하고 있으니만큼, 저 또한 잘 알지도 못하는 영화나 소설보다는 현실에 주안점을 두어서 동의의 글을 조금 더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SNS(주로 舊 트위터)에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 고 외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가해자에게 무조건적으로 공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선 위 오해는 흔한 심리상담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심층면접의 인상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의 여정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흔치 않으며, 대개는 심리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는, 그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공감을 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받아들여지므로, 이로 인해 가해자의 인생의 이야기를 듣는 것 역시 가해자에게 무조건적으로 공감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질적 연구에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으나, 서사연구(narrative inquiry)는 한 사람이 자신이 겪은 여러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 그것을 단순히 '나열된 사건들' 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주어진 맥락 속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편집·해석·배열하는 방식' 을 우선적으로 탐색합니다. 다시 말해, 범죄자가 자신의 아버지의 야반도주, 보호시설에서 자신이 탈출했던 이야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이야기 등을 할 때, 잘 훈련된 서사 분석가는 "오구오구 힘드셨겠구나~" 가 아니라 "어라, 이 사람은 이 사건들을 왜 이런 식으로 엮고 있는 거지?" 의 의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이 궁금증이 바로 제대로 된 서사 분석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해자의 서사에 무조건적으로 공감하면 안 되지만, 가해자의 서사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는 있습니다. 물론 그 목적은 일찍이 이동진 영화평론가 님도 지적했듯이 '[악인의 서사에 귀기울이는 이유는] 바로 그 악을 막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 정도 입장이라면 크게 이견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가해자가 만들어내는 서사를 제대로 분석해서 이해해야만 향후 비슷한 가해자의 출현을 막고, 그런 악을 잉태하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까지도 고발하고 폭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과연 가해자들의 서사를 얼마나 잘 분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꾸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 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어느 정도는 우리가 그 서사를 제대로 분석할 역량이 없으며 오히려 자꾸 그 서사에 동조하게 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서사를 분석할 전문가가 부족하거나, 혹은 그들의 존재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을 첨언한다면, 학계에서도 사회적 문제나 문화적 현상을 분석함에 있어서 비판적 담론·텍스트 분석을 시도하는 연구자들은 넘쳐나는데 서사적 접근이나 에스노그라피적 접근을 하는 연구자들은 존재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대중에게 '분석가는 가해자의 서사에 휩쓸리거나 편들어 주려는 게 아니라 그 서사로부터 공익적인 정보들을 설득력 있게 뽑아내려는 것' 임을 설득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로 그런 게 가능한 전문 인력들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체면과 눈치라는 중요한 문화적 속성들 때문에 타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구술하는 것이 흔치 않습니다. 따라서 분석가는 이 사람이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알아내야 하는데, 해당 분야 비전문가인 제가 보기에도 몹시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가해자의 서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마치 가해자에게 무조건적인 공감과 지지를 표명하는 심리상담인 양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잘 훈련된 분석가는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서사에 흔들리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우리 사회 전체에게 이득이 되는 중요한 정보들을 추려낼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정도 역량이 되는 전문 인력들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해자가 숨기고 있는 정보까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분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둘째,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가해자를 순수한 악인으로 판명할 수도 있습니다.

흔히 가해자의 서사라고 알려진 내용들을 보면 사회적 약자의 속성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던 불우한 유년 시절, 천문학적인 빚으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린 가계, 알코올 중독을 겪고 있는 부모, 학창시절 내내 지속되어 온 괴롭힘, 연거푸 이어지는 실직과 불안정한 노동... 실제로 사회적 약자들은 범죄의 피해자로서 취약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범죄의 가해자가 되는 유혹을 느끼기도 쉽습니다. 그들은 잃을 것이 없는 이판사판의 인생이고, 불확실한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 타인과 협동하는 것에는 망설이는 반면, 당장의 확실한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는 것에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강자인 가해자들도 드물지 않게 보입니다. 물론 그들의 서사를 이해하는 것이 마치 '이 녀석도 사실은 사회적 약자였어' 같은 결론으로 이어질 듯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가해 행위' 가 강남 룸싸롱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이 나라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화이트칼라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그들의 서사를 탐구함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누리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꿋꿋하게(?) 악행의 길을 선택한 '순수한 악인' 인지를 깨닫고 놀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순수한 악인' 이라는 표현은 조금 어폐가 있으며 오해의 소지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악인의 악함이 본유적이고 본성적이어서 그 자신이 어찌할 수 없었던 운명과도 같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따라서 조금 길더라도 '충분히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악행만을 선택한 악인' 이라고 풀어서 표현해야 이런 인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가해자들의 서사는 오히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그들의 악행을 정당화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서사 속에서 가해자가 변명할 수 없는 결정적인 '스모킹 건' 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이코패스들은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과장된 서사를 양산해 내곤 합니다. 사이코패스 점수가 높은 가해자는 참혹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는 식으로 자아도취적인 서사를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합니다. 우선 이런 과장된 서사는 대중이 그 사이코패스 가해자에게 공감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리감만을 느끼게 합니다. 다음으로, 모든 흉악범죄 가해자들이 사이코패스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시오패스적인 가해자들은 자아도취는커녕 《공공의 적》 의 명대사처럼 "왜, 사람이 사람 죽이는 데 이유가 있냐?" 같은 소리를 할 수도 있고, 또 성범죄 쪽으로 가면 사회문화적인 맥락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권력자의 범죄일 때, 우리는 가해자의 서사를 통해서 그 사람이 달리 정당화의 여지가 없는 악인임을 입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해자의 서사가 오히려 가해자의 목을 겨누는 칼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가해자의 서사를 탐구함으로써 가해자를 비로소 제대로 단죄할 수 있습니다. 꼭 권력자가 아니더라도 가해자의 서사는 그 사람이 충분히 선한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로 악의 길을 선택했던 순간들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을 무시한 채로 가해자의 서사를 외면하기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판단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어떤 가해자들은 분명히 사회적 약자로서 동정받을 만한 서사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또 어떤 가해들은 그들이 충분히 선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로 악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서사를 통해 드러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해자의 범행 동기와 배경을 제대로 판단하고자 할 때 서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악행의 순간들을 포착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적 강자들이나 권력자들이 가해자가 될 때 이러한 냉정한 평가와 분석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이것은 사회적 질서와 안정을 지키는 길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악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성찰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서사에 관심이 없는 것은 곧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건대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 는 주장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소간의 무관심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합니다. 가해자의 서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은 가해자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 가해자를 상상 속의 고정관념적(stereotypical)이고 원형적(archetypical)인 이미지를 지닌 괴물처럼 간편히 취급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가해자의 서사를 접하게 되면 뜻밖의 참작의 여지를 깨달을 수도 있고, 의외로 인간 세상 만사가 복잡하다는 것에 심란해질 수도 있으며, 자신 또한 간접적으로 그 범죄에 책임이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는 걸 자기도 모르게 인정해서일까요?

우리가 한 사람의 서사에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더 호의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한 사람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취약함과 숭고함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은, 가해자의 서사에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서 그 괴물이 영원히 감방에서 썩기만을 바랄 수 없습니다. 불가해한 괴물은 꽁꽁 묶어서 영원히 가두면 그만이지만, 인간에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느끼는 것이지만,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 며 SNS에서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제일 앞장서서 인류애 어쩌고를 운운하는 것을 보노라면 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 얼룩소(alookso)에 제가 올렸다가 보관 중이던 게시글을 티스토리에 다시 게시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용이 낡았을 수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