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상황의 변화와 환경적 요구에 스스로를 맞추어 적응시키는 가변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의 정신적인 역량은 한정되어 있어, 정신적으로 바쁠 때에는 현실을 이해하기 편하게 왜곡시킵니다."
위의 두 진술을 가만히 곱씹다 보면, 초보 부모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잡히게 됩니다. (만일 혼자 힘으로 이해하시는 데 성공하셨다면, 이하의 글은 읽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상 어느 학문이건 다 그렇겠지만, 대학원에서 2년 이상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어떤 문제를 대하든 간에 자신이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고유한 인식론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그리고 그 인식론은, 자신이 전공한 학문에서 현저한 합의가 이루어진 기초적인 진술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사회과학 분야의 전공자라면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 '사회란 어떠한 존재인가?' 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기본 전제(basic assumption)를 바탕으로 삼아서 인식론을 도출해 냅니다.
이제부터는 그 수많은 학문들 중의 하나의 분과학문에 속하는 사회심리학을 통해서 초보 부모들의 심리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맘카페 그 자체도 하나의 사회심리학적 현상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일단은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분들께 우선권을 양보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우선 주목할 것은 초보 부모들이 부모라는 역할 앞에서 대체로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특정한 심리적 경험입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먼저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맘카페를 이해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참고: 이 글에는 '부모' 라는 단어가 주로 쓰이고 있으나, 단어 자체가 성 불평등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고, 부모의 문제와 엄마들의 문제는 서로 같지 않다는 지적도 나올 것 같습니다. 가장 적절한 단어는 학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주 양육자' 일 텐데, 너무 딱딱한 표현이어서 일부러 배제한 점 양해 바랍니다.)
첫째,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게 된 부모들은 그 이전에 비하여 위험과 불안을 더욱 크게 경험합니다.
전제: 인간은 상황의 변화와 환경적 요구에 스스로를 맞추어 적응시키는 가변적인 존재입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변화하는 존재라고 봅니다. (비슷한 분과학문인 성격심리학의 경우, 인간의 상대적으로 잘 변화하지 않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외부 환경이 변하는데 그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개인들이 모인 집단은 냉혹한 환경압에 의해서 도태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시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유입됨에 따라서 스스로의 태도와 행동 양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건강한 현상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안 된 어떤 남성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는 "결혼 전에는 아내가 자기는 직업적으로 성공할 거니까 일 그만두라거나 애 낳아서 키우라거나 하는 건 아주 꿈에도 꾸지 말라면서 서약까지 받았었는데, 최근 갑자기 사람이 돌변해서는 애 낳는 게 로망이라고 노래를 부르지를 않나, 어젯밤에는 심지어 자기한테 엄마 엄마 하는 아기랑 꿈 속에서 만나서 놀다 왔다지를 않나, 형편이 안 된다는 핑계로 이 이상 거절하면 오히려 내가 나쁜 놈이 될 것 같다, 어떡하면 좋겠냐" 는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실화를 각색했습니다.) 어떤 남초 커뮤니티들의 생각처럼 '육아와 가사가 편해 보여서' 는 너무 나간 생각일 겁니다. 사회심리학은 사람이 변화하는 존재라고 보는데, 이 사례는 심지어 한때 굳세어 보였던 신념과 결의조차도 허무하게 바뀔 수도 있음을 예시화할 뿐입니다.
밥 알테마이어(B.Altemeyer)라는 심리학자가 1996년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인간의 변화는 일정한 패턴을 보입니다. 대학교에 진학하는 경험은 그 사람에게 좀 더 개방적이고 반권위적인 태도를 갖게 하며, 특히 인문학을 전공으로 삼을 경우 더더욱 그 반권위주의적 효과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여러 발견들이 있지만, 알테마이어는 결혼해서 부모가 되고 자녀를 양육하는 경험이 그 개인을 심리적으로 권위주의적으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인문학 전공자가 대학교 졸업 후 결혼해서 자녀를 가질 경우, 대학 진학 전에 나타냈던 권위주의적 태도의 수준은 대학 진학을 통해 어느 정도 감소하다가, 결혼 및 출산을 거치면서 다시 감소분의 상당량이 회복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이 미묘하고 복잡한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부모가 되면 권위주의적이게 된다" 는 말은 굉장히 껄끄럽게 들립니다. 당장 많은 젊은 부모들이 "무슨 소리냐, 나는 국짐당의 토 나오는 특권의식을 극혐하고 윤석열 탄핵을 지지하며 탈권위적인 소통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신을 기리는 사람인데, 이런 내가 권위주의자라는 말이냐" 라며 발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헌데 심리학에서 말하는 권위주의적 심리는 우리나라 정치판을 배경으로 깔고 말하는 권위주의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보수주의의 심리 역시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에서 말하는 '보수' 와 꽤 차이를 보입니다. 다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주제에서 이탈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알테마이어의 뒤를 이어 권위주의 연구를 진행한 유명한 인물이 바로 존 더킷(J.Duckitt)입니다. 그는 오늘날 심리학계에서 말하는 권위주의적 심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권위주의는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social attitude), 좀 더 거창하게는 세계관(worldview)에 가까운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킷은 권위주의적 심리가 뚜렷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주변 환경을 '무서운 세상'(dangerous world)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적용하면,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더 이상 20대 초반의 그 무서울 것 없던 멘탈리티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활개 치며 뛰어다니던 젊은 시절에는 바라보지 못했던, 미묘한 위험의 징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몸을 낮추어 앉아서 자녀의 눈높이로 세상을 둘러보게 됩니다. 그들 말마따나, 요즘 세상은 갈수록 무서워지니 말입니다.
더킷은 세상을 무서운 곳으로 느끼는 심리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강력한 보호자', '든든하고 확실한 지도자', '검증된 기존의 방식' 을 선호하게 하고, 반대로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실험', '재기발랄한 시도', '전복적 기획' 에는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권위주의자들의 심리이고, 부모가 된 사람들은 이 심리에 예전보다 더 가까이 이끌립니다. 만일 30~40대에 누군가의 부모가 된 자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10~20대의 급진적이고 과감했던 자신을 실망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소시민' 이라고 부르는 작은 사람의 멘탈리티를 가진 채, 많은 부모들은 불확실한 위협들로부터 확실히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고자 합니다. 결혼한 이상 더는 홑몸이 아니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맘카페는 어쩌면 그런 불안감과 공포를 해소해 줄 수 있는 '강력한 권위의 근거' 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보 엄마들에게 자녀의 모든 것들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새로운 경험입니다.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아차 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자녀를 물가에 내놓기라도 한 양 하루하루가 불안불안하게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이 무서운 세상 속에서 내가 확실하게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과거에는 시부모나 친부모, 일가 친지들, 이웃사촌들이 그 역할을 감당했다면 오늘날의 도시화되고 핵가족화된 환경에서는 맘카페가 그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무서운 세상 속에서 나와 내 자녀를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안심 되는 커뮤니티, 그것이 바로 맘카페인 것입니다.
둘째,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게 된 부모들은 만성적인 정신적 역량의 고갈 상태에 빠집니다.
전제: 인간의 정신적인 역량은 한정되어 있어, 정신적으로 바쁠 때에는 현실을 이해하기 편하게 왜곡시킵니다.
드디어 유치원에 들어간 금쪽 같은 내 아이가 발표회를 한다고 합니다. 시작 전부터 부모는 싱글벙글해서 카메라를 치켜듭니다. 드디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가 무대에 올라오고, 부모는 연방 셔터를 눌러대며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무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내 아이의 모습에 흠뻑 빠져 있을 무렵,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꽃밭 같은 뇌리를 가르고 꽂혀듭니다. "저기요, 안 보이잖아요!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성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부모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여기 나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무대에 내 아이만 올라가 있는 게 아니었구나.
인간의 뇌는 카메라처럼 모든 외부 정보를 고스란히 담아내지는 못하는 기관입니다. 관심이 있는 대상에만 집중하고, 관심이 없으면 한 눈으로 보고 다른 눈으로 흘려 버립니다. 위에서 소개한 가상의 예시는 사람의 시야가 때때로 얼마나 좁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상식과 교양을 갖추어서 주변을 배려하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런 개념 없는 부모들을 보면 "부모 노릇도 자격증을 만들어야 돼..." 하면서 혀를 끌끌 차던 사람이었을 텐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바로 그 무개념 부모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흘려 버리기' 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는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는 것이 있는데, 시끄러운 파티장 속에서 어떤 특정한 목소리나 단어에만 정확하게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런 능력이 없다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길을 잃은 내 아이의 목소리를 구분해 듣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위의 유치원 발표회와 같은 사례는 인지심리학에서 많이 연구되어 왔는데, 가벼운 용어로는 터널시야(tunnel vision)라고도 자주 불리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정신적으로 바쁘고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을 때, 지치고 고단할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시간에 쫓기고 있을 때, 수면박탈을 겪을 때, 기타 이유로 압박감을 느낄 때 정신적 역량이 더 빠르게 고갈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정신적 역량이 고갈될 때 제일 먼저 터널시야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터널시야의 극단적인 사례는 전쟁터의 군인들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적잖은 참전용사들은 첫 전투 순간에 "마치 전쟁터를 빨대 구멍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내 총의 자그마한 가늠쇠 바깥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와 같은 극단적인 터널시야 현상을 보고했습니다.
육아는 굉장한 정신적 역량을 요합니다. 심지어 신생아 시절에는 밤낮을 가리지 못하다 보니 부모가 쌍으로 수면박탈까지 겪곤 합니다. 자녀는 언제 어떻게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고, 부모의 도움이 늦을 경우 예기치 못한 최악의 상황까지 흘러갈 수도 있어, 부모로서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클로디아 골딘(C.Goldin)이 말한 '유연한' 일자리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육아의 애로를 감당할 수 있는 일자리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워킹맘들은 남들보다 몇 배로 힘듭니다. 일하다가 집에서 전화가 오면 하던 일 다 내려놓고 온 신경을 자녀에게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를 돌보다가 일터에서 전화가 오면 장난감 다 내려놓고 온 신경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기울여야 합니다. 대부분은 양쪽 모두에서 남들보다 저조한 결과만을 얻는데, 사실 우리는 그 정도 결과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내야 마땅합니다.
초보 부모들이 (그리고 특히 여성들이) 육아의 어려움으로 인해 만성적으로 정신적 역량이 고갈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어째서 이들이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하여 욕을 먹게 되는지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야 육아를 전담하는 여성들은 집에만 머물러 있었으니 잘 티가 나지 않았을 것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일가 친지들이나 인근 이웃들이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현대화되고 도시화되며 산업화된 환경에서는 까딱 잘못하면 사회적 삶의 스텝이 꼬이기 쉽고, 육아는 정신적 역량을 고갈시킴으로써 특히나 그 스텝이 쉽게 꼬이게 만듭니다. 결국 결혼 전에는 절대 그러지 않았을 사람들이 이제는 맹한 판단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쉽게 눈에 띄게 됩니다.
흔한 말로 '맘충' 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애가 카페에서 시끄럽게 장난치고 뛰어노는데 부모가 제지하지 않아요, 다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렇게 주변에 대한 배려가 없을까요?" 라는 한탄은 한 꺼풀 벗겨보면 그 부모가 정신적 역량이 고갈되어서 주위 사람들의 존재를 아예 인식도 못 하는 상황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금쪽 같은 내 아이에 대한 사랑만이 부모를 눈 멀게 하는 게 아니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겪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머리에 스팀이 오르는 바로 그 상황 때문에 부모가 눈 멀게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는데 화장실이 보이지 않으니 "급한 김에" 일단 카페 머그컵에다 소변을 보게 시켰다는 유명한 일화 역시, 침착하게 생각하면 터무니없을 만큼 상식 밖의 행동이지만 그 상식을 떠올리기에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맘카페는 여기서 어떤 심리적 결과를 초래할까요? 정신적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모여서 집단을 이루고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면, 그때부터는 그 사람들이 왜곡시킨 현실의 '터널' 들이 점차 실체를 갖추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것을 고정관념(stereotype)이라는 잘 정제된 단어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맘카페가 비난 받는 주된 원인 중의 하나로 기업이나 공공기관, 학교에서 엉뚱한 집단적 위력행사를 하는 경향이 꼽히곤 하는데, 심리학적으로는 그 위력행사에 참여하게 되는 주된 동기가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 우리 담임은 자기가 맡은 우리 아이에게 관심을 주기는커녕 떡고물만 바라고 있을 게 분명해. 내가 봤던 선생들은 다 촌지를 달라고 했었지.' 이렇게 생각하는 부모들끼리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자녀의 학업을 화제로 대화하기 시작한다면, 그 자녀들의 담임교사들에 대해서 도무지 좋은 평가가 나올 수 있을까요?
결론: 눈 멀고 불안한 부모들이 모여드는, 인간적으로는 자연스럽고, 사회적으로는 걱정스러운 그곳
인생 2회차가 아니라면 부모 역할은 감당하기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되고 나면 내 자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하며 세상 만사를 두려워하게 되고,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이느라고 머릿속의 CPU 점유율은 늘 90%를 넘나들곤 합니다. 이것은 인지상정이고, 부모들이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부모들이 더 이상 제대로 된 사회적 도움을 받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이고, 이 극도로 과밀화되고 경쟁적인 환경에서 부모들은 내 앞길을 온전히 내가 헤쳐나가면서도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결국 기댈 곳은 맘카페입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같은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끼리 왜곡된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맘카페는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맘카페는 고정관념을 줄이기보다는 늘리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맘카페가 문제가 될 때, 동일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인해서 사회 곳곳에는 비슷비슷한 여러 커뮤니티들의 문제들이 우후죽순처럼 터져나올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불안 요소가 상존하는 한,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경쟁이라는 명목으로 점점 더 인간의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똑같은 현상은 여기저기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사회적 문제들을 하나의 관점에서 연결하여 유기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신다면, 언젠가 여러분이 얼룩소에서 읽으셨던 이 글이 떠오르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 얼룩소(alookso)에 제가 올렸다가 보관 중이던 게시글을 티스토리에 다시 게시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용이 낡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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