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정의 이론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 내용들이 생소하셨던 분들도 계실 것이고, 이미 익숙하실 분들도 충분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래에서 말씀드릴 주제들은, 정의 이론을 자신의 인식론으로 사용할 준비가 되신 분들에게 제가 질문하고자 하는 내용들입니다. 이 질문들은 제가 해답을 찾지 못했거나, 혹은 제 나름대로의 대답을 갖고는 있지만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것들입니다.

1. 어느 외판원 감찰 담당자의 고민

어떤 회사의 세일즈 부서에는 동일한 팀원 수로 구성된 3개의 외판원 팀이 있습니다. 각 팀의 실적은 영업A팀 > 영업B팀 > 영업C팀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팀들의 실적평가를 해야 하는 감사팀원이고, 그들이 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고객을 속이거나 이익을 편취하는 등 규정을 위반하는 사례가 있는지 감찰에 착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감찰에 무한정한 시간적·물적·인적 자원을 투입할 여건이 되지 못하며, 또한 현실적으로 어느 팀이건 규정을 '전혀 어기지 않으면서' 영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암암리에 존재한다고도 가정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여러분의 동료 감사팀원들이 의견을 내놓습니다.

① 첫째 제안은, 가장 성과가 좋지 못한 영업C팀을 중점적으로 감찰함으로써 저성과 팀에게 단단히 본보기를 보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혹독하고 깐깐한 감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힘내서 영업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② 둘째 제안은, 오히려 가장 성과가 좋은 영업A팀을 중심으로 감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성과 팀은 노하우가 부족하고 일머리가 없어서 의도치 않게 규정을 위반하기 쉽지만, 고성과 팀은 업무의 특성을 알 만큼 알기에 그들이 규정을 어겼다는 것 자체가 고의적이고 기만적인 저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③ 마지막으로, 모든 영업팀을 동일한 강도로 감찰하자는 제안이 있습니다. 이 경우 각 팀별로 일부 영업 사례들만을 추출해서 감찰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는 영업팀들에게 억울한 감찰 결과가 우연히 얻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여러분은 '공정한 감찰' 이라는 기준을 갖고 의견을 제시해야 합니다. 세 가지의 제안들 중에서 가장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제안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의 이론에서 분배적 정의와 응보적 정의에 관련된 지식들을 활용하여 이 문제에 접근해 보십시오. 혹은 위의 세 가지보다 더 나은 제4의 제안이 있습니까?

2. 보상금 없는 공적 사과는 그 자체로 충분할까?

공적 사과(official public apology)는 어떤 조직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그 구성원들을 향해 집단 내(within-group)의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의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공적 사과는 평소 불의하다고 여겨지던 조직이나 국가의 이미지가 정의롭다고 느껴지게 뒤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결정적 순간 중 하나입니다. 정의의 영역에 비추어 볼 때, 공적 사과는 절차적 정의 및 회복적 정의에 밀접한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즉 그 사과를 통해서 사과를 받는 구성원들을 높여 주고, 집단의 깨어진 가치를 다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흔히 공적 사과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금전적 보상(monetary compensation)입니다. 정의 이론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공적 사과를 통해야만 그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사람들이 사과 없는 보상금에 대해서 '입막음 돈'(hush money), '피 묻은 돈'(blood money)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정의 이론이 잘 확증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정반대의 상황, 즉 보상금 없는 사과일 때입니다. 정의 이론의 관점에서는 보상금 없는 사과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 집단의 정의로움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되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공적 사과에 대해 흔히 '보여주기식 쇼', '립 서비스'(lip service), '입에 발린 말'(words without action)이라는 표현도 사용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보상금이 없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정의 이론의 반례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하나의 설명은, 보상금은 수혜자의 사리사욕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적 사과의 정의로움을 실체적으로 증빙하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개인 간에 음료 한 병을 건네면서 사과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과도 같습니다.
② 또 다른 가능성은, 집단 내 불의가 어떤 성격을 갖는가에 따라서 보상금이 요구될 수도 있고 불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수혜자들이 사회적으로 위축된 경우에는 공적 사과가, 자원배분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에는 보상금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③ 한편으로, 사과와 보상을 함께 제공하는 사회적 각본(social script)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즉, 사람들의 불만족은 각본이 깨진 것에 대한 반발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④ 마지막으로, 공적 사과의 주체(집권 정부·정당)와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이 같거나 다른지 여부가 정의로움보다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야당 지지자들은 정부의 사과에 여당 지지자보다 더 인색하게 반응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혹시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3. 함께 살기 위한 처벌인가, 추방하기 위한 처벌인가?

정의 이론에서 응보적 정의는 집단의 규칙을 위반한 사람을 제재함으로써 구성원 간 권력의 불균형 상태를 균형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두가 규칙을 준수하는데 누군가가 혼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으로 권력균형이 깨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규칙위반자는 부당하게 권력적 강자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따라서 규칙위반자를 처벌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획득한 권력을 다시 회수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처벌이 종료된 이후 공동체가 규칙위반자를 대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종종 '사형시켜라' 와 같은 날선 여론에 직면하곤 합니다. 꼭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범죄 이력이 있는 이웃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꺼리며, 이러한 기록이 하나의 낙인이 되어 범죄자의 재활을 저해하고 2차·3차 범죄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런 양상들을 지켜보면, 현실적으로 처벌의 의의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권력균형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말썽을 일으킨 개인을 추방' 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이와 관련하여 정의 이론이 미처 설명하지 못하는 내용을 법학자 마사 너스바움(M.Nussbaum)이 대신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 등의 저서를 통해, 어떤 사회가 자신들이 완전무결하고 고결한 존재라고 믿는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을 때 범법자에 대해 분노가 아니라 혐오를 경험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도 언제든 법을 어길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골칫거리를 내쫓기만 하면 자신들은 앞으로도 계속 완벽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벌의 의의는 규칙위반자를 재활시켜 재통합하는 데 있을까요, 아니면 집단에서 추방하는 데 있을까요? 정의 이론이나 너스바움의 아이디어 이외에 설득력 있는 다른 논리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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