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사회적 지배 이론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 내용들이 생소하셨던 분들도 계실 것이고, 이미 익숙하실 분들도 충분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래에서 말씀드릴 주제들은, 사회적 지배 이론을 자신의 인식론으로 사용할 준비가 되신 분들에게 제가 질문하고자 하는 내용들입니다. 이 질문들은 제가 해답을 찾지 못했거나, 혹은 제 나름대로의 대답을 갖고는 있지만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것들입니다.

1. SDT는 공수처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현대사회 이슈 중에서 SDT를 적용하기에 가장 적절해 보이는 이슈는 아마도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일 것입니다. 이 기관은 2020년 7월 당시 문재인 정부에 폭넓게 공유되고 있었던 권력형 비리 척결과 검찰 수사권 제한이라는 문제의식을 부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독립기관으로서 설립되었습니다. 공수처 설립의 기본 전제 중 하나는 검찰이 중립적인 수사기관이라고 하기에는 기득권 세력에 봉사할 가능성이 너무 크다는 가정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사법제도, 특히 검찰과 같은 수사기관이 대체로 위계를 강화시키는 제도로서 기능한다는 SDT의 관점과도 일치하며, 따라서 공수처의 설치는 위계를 약화시키는 제도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이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SDT가 설명할 수 있는 범위는 딱 여기까지라는 것입니다. 즉, SDT는 그 이상으로의 본격적인 예측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듯합니다. SDT는 공수처를 둘러싼 의미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공수처를 통해 우리 사회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쉽게 예측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공수처가 성공 혹은 실패했을 때 그 이유를 사후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공수처가 설립되고 첫발을 내딛었을 때 앞으로 이 기관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사전에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예측을 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① 공수처는 실제로 사회적 평등의 확대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가능합니다. 이는 공수처의 설치를 국선변호사 제도나 군인권센터 등의 독립적 감시기구와 같은 시각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SDT는 이와 같은 제도화된 견제의 선례에서 볼 수 있듯, 공수처를 통해서도 제도적 수준에서의 위계가 일정 부분 약화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② 공수처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비관론도 가능합니다. 이는 공수처가 위계를 약화시키는 기관이자 그와 동시에 수사기관으로서 기능하기는 이론적으로 어렵다는 시각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위계를 약화시키려면 수사관들이 아니라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수사관들은 위계를 또 다른 방식으로 강화시킬 뿐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거침없이 칼을 들이대는 B급 영화 속 검사 캐릭터' 는 SDT의 세계 속에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③ 어쩌면 공수처는 SDT가 아니라 다른 대안적 이론을 통해 분석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대표적으로 본문에서도 비교했던 SIT를 들 수 있습니다. SIT의 관점에서 공수처는 그저 권력을 잡은 집단의 내집단 이익에 봉사하는 기관일 수 있습니다. 당장은 평등을 향한 개혁을 이루는 것 같지만, 정권이 바뀌면 정치적 외집단에 대한 보복을 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SDT의 관점을 견지할 때 공수처의 향방에 대해 어떤 예측을 내놓을 수 있으십니까? 혹은 더 좋은 다른 이론이 있다고 보십니까?

2. '20대 남자 현상' 을 설명하지 못한 SDO

SDT가 인식론으로서 대단한 것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불평등의 지속' 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불평등을 지속시킬 것인가? 저 제도는 불평등을 약화시킬 것인가? 이런 체제는 사회적 위계를 약화시키는 데 힘을 실어주게 될까? 저런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사회적 위계는 더욱 강화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SDT는 현실 정치와 사회적 정의 운동가들에게 비상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SDO는 소위 '꼴통들의 프로파일' 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RWA와 함께 즐겨 활용되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시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이 높은 RWA와 높은 SDO 프로파일을 보인다는 연구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사회를 생각할 때, SDO는 어떤 사람들의 프로파일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소위 '20대 남자 현상' 을 이야기합니다. 이들이야말로 평등의 도래를 가로막는 가장 위험한 반동세력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 20대 남성들이 20대 여성들에 비해, 혹은 30대 이상 남성들에 비해 얼마나 높은 SDO 점수를 기록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시사IN》 664호에서의 설문조사에서 20대 남성들은 30대 이상 남성들과 비교할 때, 심지어 20대 여성들과 비교할 때에도 의미 있는 SDO 점수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데이터가 얻어진 것은 어째서일까요? 가장 초보적인 수준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① 몇 점 척도에서 해당 점수가 얻어졌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긴 하지만, 각 집단들 모두 점수가 지나치게 높거나 지나치게 낮게 나타났다는 쪽으로 해석의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20대 남자들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응답자 전체가' 특이하게 응답했을 수 있습니다.
② 다른 응답자들과 달리, 유독 20대 남성들은 SDO 척도에서 진술하는 '불평등의 긍정' 을 접했을 때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역차별의 박탈감과 결부지어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응답자들은 자신이 차별받는 형태로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그 불평등에 맞서려 할 수 있습니다.
③ 어쩌면 처음부터 SDT는 '20대 남자 현상' 에 적합하지 않은 이론적 조망일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BJW와 같은 대안적인 개념들을 측정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20대 남자 현상' 은 불평등이 지속되는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 이외에 더 나은 코멘트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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