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린 소녀가 등장하는 게임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모양이다. 게임회사 캡콤(CAPCOM)에서 새로 내놓은 IP 《프래그마타》 라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소녀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 다이애나(Diana)가 게이머들을 '딸바보' 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해당 게임은 오픈 월드가 아닌 직선형의 액션 게임인데, 여기서 주요 콘텐츠로 주인공이 소녀와 함께 놀아주고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레딧 등지에서는 이 소녀 캐릭터에 대한 반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말인즉슨 다이애나는 여성에 대한 성 상품화이자 성적 대상화이고, 아동에 대한 부적절한 재현이며, 최소한 아동성애자들을 결집하고 자극시켜서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옹호론자들은 주로 "순진무구한 캐릭터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문제다"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해 보겠다. 우선 비판론자들의 주장은 매체 비평의 역사에서 낯설지 않아 보인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사회, 아동이 약자인 사회라는 거시적인 맥락을 고려하면, 여아를 재현하는 방식이 특별히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이들이 작품 내적 맥락과 작품 외적 맥락을 나누어 정리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판론자들이 짚는 부분은 작품 외적 맥락이다. 이것은 작품의 이용자층이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구조적 영향을 받는다는 맥락이다. 문제는 작품 내적 맥락이 이 과정에서 도외시된다는 것이다. 《프래그마타》 에서 다이애나는 어떻게 묘사되는가? 주인공에게 유혹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는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 몸매를 부각하는 포즈를 취하는가? 비판론자들은 다이애나가 작중에서 맨발로 걷는 점을 자주 지적한다. 그렇다면 그 맨발에 포커스가 맞춰지는가? 혹은 불필요하게 앵글 안쪽으로 포함시키는가?
작품 외적이든 내적이든 간에 매체 비평을 하는 분들이 어느 하나의 맥락을 경시했던 적은 없었지만, 두 맥락 중에서 어느 하나가 유해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어느 쪽을 중시할지에 대한 합의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비록 내가 게임에 대해서는 지식이 일천하지만, 내가 아는 한 다이애나는 《프래그마타》 에서 문제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실제 딸을 키우는 개발자들의 직접적인 자문을 받아서 연출되었고, 그녀의 맨발은 펑퍼짐한 푸른 코트 아래로 자주 가려졌으며, 화면 앵글에 부자연스럽게 자주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마도 다이애나는 성적 판타지의 재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를 근거로 하여 "다이애나는 문제없다!" 를 외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 질문에 확신을 갖고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하는 사람은 아직 없어 보인다. 문제없을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이애나는 유해할 수도 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 게임에 얽힌 일각의 논란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수 년 전에 X(舊 트위터)에서 어떤 사람의 트윗에서 드러난 무지가 이번 논란에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 트위터리안은 《소녀혁명 우테나》 의 주인공의 머리카락 색깔이 분홍색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여, 보나마나 의존적이고 무능력한 여성상을 강화시키는 작품일 것이라고 섣불리 비판했다. 그러나 주인공 텐죠 우테나는 자기 자신이 왕자님이 되겠다는 결심이 핵심 콘셉트인 캐릭터로, 작품 자체도 1997년 방영 당시에나 지금에나 실험적이고 퀴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가부장제 전복을 기획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일본 애니메이션보다도 더욱 여성주의적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작품 외적으로 보면 분홍색이 여성의 종속을 상징한다는 거시적 맥락이 존재하지만, 작품 내적으로 그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주인공은 가부장제의 전복을 기획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프래그마타》 에서나 《소녀혁명 우테나》 에서나 마찬가지로, 작품 내적인 인물 재현 방식이 작품 외적인 거시적 억압구조를 얼마나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언급하지만 매체 비평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작품 내적 맥락과 외적 맥락 중 어느 하나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작품 외적 맥락의 영향력을 절대시하는 듯한 비평을 시도하곤 한다. 그러면 비평이라는 활동 자체가 납작해진다. 인간 세계가 굴러가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고, 결국 이 작품이나 저 작품이나 똑같이 기성품 같은 비평이 나온다. 인물의 서사는 무시되고, 인물의 외양만이 절대적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비판적(critical)인 접근조차도 아니다. 생각의 방식을 먼저 정리하고, 어떻게 생각할지 합의를 이루어야, 일반 대중에게 "너희들의 시선이야말로 문제다" 라는 무시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 이 코너는 특정 이론에 입각하거나 참고자료를 인용하지 않고서 다양한 길이로 쓰여지는 가벼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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