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어엿한 자격을 획득하고 막 선원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바다와는 인연이 없으므로 상황 묘사가 부정확할 수도 있다.) 당신은 물론 최고의 선박을 통솔하는 늠름한 선장이 되는 것을 동경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선박은 드물고 지원자는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랜 좌절 끝에 당신을 받아준 작은 배가 마침내 나타났고, 당신은 학교에서 배웠던 해사 지식과 항해기술을 마음껏 갈고닦을 기대에 부푼다. 그러나 그렇게 승선한 작은 돛단배는 가라앉아 가고 있던 중이고, 그 배의 선장은 한 명의 손이라도 아쉬운 차여서 당신을 다짜고짜 배에 태운 상태다. 선원들은 선내에 위협적으로 차오르는 바닷물을 맨손으로 퍼내는 중이다. 당황한 당신에게 선장이 외친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물 좀 퍼내!"

 

훗날 당신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때를 회상한다. 물을 퍼내는 일은 당신이 경력을 쌓기 위해서 배웠던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바다 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무의미한 일이었다. 건강은 시시각각 무너져 갔고, 두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물펌프 하나만 있었더라면 당신의 모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위험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선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는 물펌프를 사는 것이 너무나도 아까운 지출이었다. 이 위기만 넘기면 너도 네 재능을 펼치면서 성장할 수 있어, 라고 선장은 약속했지만, 그것이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 금세 분명해졌다. 다른 선원들은 더 늦기 전에 앞다투어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하고 있었다. 당신이 지금 이렇게 앉아서 회상할 수 있는 것은, 그때 그 선원들과 당신의 판단이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금 새로운 출항을 위하여 더욱 이를 악물고 노력하겠는가? 많은 신입 선원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뭔가 망가진 상태로 가라앉지도 못하고  바다 위를 하염없이 표류하는 배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다시 노력하지 않으면, 받아주는 배는 아예 없었고, 더욱 노력해서 다시 도전하면, 비슷한 배에 또 승선하거나, 혹은 폭풍 속을 떠돌게 되었다. 이제 다시 질문하자면, 이번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금, 더욱 더 이를 악물고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노력하겠는가?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선원들이 꿈을 접고 바다를 떠난다. 이제는 좋은 배를 만날 자신도 없고, 배웠던 것은 전부 잊었고, 남은 것은 손끝에 남은 흉한 상처들뿐이다. 그러자 나약하고 패기가 없다며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 그것이 인간 본연의 나약함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떠올리지 않는다.

 

당신이 바다를 떠나 있는 동안, 사람들은 당신이 '쉬고 있다' 고 말한다. 일부는 그것이 당신에게 모욕적일 수 있다면서 '숨고르고 있다' 고 바꿔 부르자고 말한다. 다른 일부는 당신의 상황을 '은둔한다' 고 묘사한다. 당사자로서 평가하건대, 이런 표현들 중 무엇이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손끝의 통증을, 그리고 선내로 쏟아져 들어오던 바닷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첫 항해부터 번듯한 큰 배를 타고 화창한 날씨에 항해할 생각부터 한다' 고 손가락질한다. 그들은 경험 없는 선원에게는 황천항해를 맡기고, 경험 많은 선원에게는 바캉스 같은 손쉬운 항해를 맡기는 것이야말로 합당하다고 믿는다. 게다가 그들은 당신이 맨 처음에 그 작은 배에 기꺼이 올라탔었다는 사실을 전혀 떠올리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가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상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야겠다. 선원들은 바닷일을 그만두더라도 육지에서 새로 일자리를 구하면 되지만, 이 대한민국에 널려 있는 '쉬었음 청년' 들은 일을 안 하고서 무한정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쉬었음 청년들도 무언가를 나름대로 시도한다.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무기력이나 무동기가 아니라, 그 사이에 사라져 가는 지식들과 기억들, 그리고 사회생활을 위한 감각들이다. 얄궂게도 거친 세파의 기억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더는 순풍에 돛 단 인생을 상상하지 못하지만, 폭풍 속에 조난당한 인생만큼은 생생하게 상상한다. 그들은 자신의 앞에 기다리고 있을 어두운 미래를 꿰뚫어본다. 바다를 등지고 떠난 그들은 순풍에 돛 단 항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는 바다로 쉽게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 이 코너는 특정 이론에 입각하거나 참고자료를 인용하지 않고서 다양한 길이로 쓰여지는 가벼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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