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혹은 2031년에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 질문을 일반화하자: 반사회적 인터넷 커뮤니티를 극단주의 집단으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박가분(2013) 이후로 일베는 종종 진지한 논의와 학술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김학준(2014)은 심층면접법을 통해 일베 내부에서 통용되던 담론의 지도를 그려내면서, '레벨' 제도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 탓에 반사회성이 극단적으로 증폭된다고 하였다. 대구 지역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실시한 양정혜(2015)는 응답자들의 27%가 일베의 문제점으로 우익 극단주의 가치관을 꼽았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일베를 사회심리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 난관에 봉착한다. 극단주의를 분석하는 사회심리학적 인식의 틀에 일베가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주의 연구에 가장 애용되는 사회심리학 이론은 불확실성 정체성 이론(UIT)이다(Hogg & Adelman, 2013). 이 이론에 따르면, 자기에 대한 이해가 불확실한 개인일수록 실체성(entitativity) 높은 집단에 정체화하게 되고, 집단의 변두리를 겉돌다가 중심부로 진입하여 전형(prototype)이 되기 위해 과격하고 극단적인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이때 실체성이란, 집단의 외부경계가 명확하고 내부구조가 위계적이며 공동의 운명을 짊어지는 성질을 말한다. 문제는, 일베는 실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가입과 탈퇴의 개념은 약하다 못해 초기엔 아예 없었고, '친목질' 을 배격함으로써 구성원 간 위계를 제거하며(이길호, 2014), 운명 공동체는커녕 '팝콘' 과 '저격' 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 UIT의 관점에서 일베는 극단주의의 산실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베가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속 삶의 원칙들을 거스르는 행동 역시 사회심리학의 연구대상이다. 도덕적 기반 이론(MFT)에서 예측하는 것은, 도덕적 가치판단에 5가지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Graham, Haidt, & Nosek, 2009). 일베는 타인을 돌보아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파괴하였기에(ex. 광화문 폭식투쟁) 돌봄/위해(care/harm)의 도덕성 기준에 어긋나고, 당시 사회가 고귀하게 다루는 대상을 상징적으로 더럽히고 조롱하였기에(ex. 노란리본 이미지 조작)
정결함/오염(sanctity/degradation)의 도덕성 기준에 어긋난다. 일베가 스스로를 변호하는 논리는 요컨대 개인의 자유인데, Haidt & Joseph(2009)는 이런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이 모든 종류의 도덕성 기준을 남보다 덜 의식한다고 하였다. 이 부류는 쾌락주의적(hedonic)으로 행동하며, 도덕적인 삶을 위한 공동체적 합의에 개의치 않는다. 즉, 일베는 우리 사회의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존재(였)다.

일베는 극단주의 집단이 아니라 부도덕한 집단으로 인식될 때 사회심리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시민의 덕성이요 대한민국이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적 가치들이다. 단순히 일베가 그것에 어긋나서가 아니라, 그 가치의 존재 의미까지도 적극적으로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사실 UIT가 상정하는 극단주의는 일베의 성향과는 사뭇 다르며, UIT는 '유럽의 어떤 이주자 청년이 사회 부적응으로 인해 IS에 심취하여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더라' 같은 사례를 분석하기에 더 적합하다. 일베는 물론 폭탄 테러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MFT는 이들이 넘어서는 안 될 도덕의 선을 지우는 의례를 통해서 쾌락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여러 문헌들에서 공히 밝히듯(e.g., 김학준, 2014; 양기민, 2014), 일베는 '착하고 반듯한' 청년들이다. 그들이 "이런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사회심리학자들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김학준 (2014).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박가분 (2013). 일베의 사상: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오월의봄.
양기민 (2014). 일베는 반-사회적인가? 문화과학, 80, 104-124.
양정혜 (2015). 일간베스트 저장소 (일베) 이용자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과 태도: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사회과학연구, 34(1), 53-82.
이길호 (2014). 일베를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 시민과세계, 25, 244-256.
Graham, J., Haidt, J., & Nosek, B. A. (2009). Liberals and conservatives rely on different sets of moral foundat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6(5), 1029-1046.
Haidt, J., Graham, J., & Joseph, C. (2009). Above and below left-right: Ideological narratives and moral foundations. Psychological inquiry, 20(2-3), 110-119.
Hogg, M. A., & Adelman, J. (2013). Uncertainty-identity theory: Extreme groups, radical behavior, and authoritarian leadership. Journal of social issues, 69(3), 436-45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