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공정성 논쟁에 있어 담론의 주체로서 호명되는 사회적 범주는 다름아닌 20대 남성이다. 이준석(2019)의 《공정한 경쟁》을 앞세워, 20대 남성들은 한국사회의 공정성을 문제삼는 주체로 대번에 떠올랐다. 하지만 신진욱(2021)이 청년세대 담론에 대해 경고했듯이, 20대 남성들이 꼭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짚어볼 만한 것은 학력이다. 한국언론학회와 한국기자협회 공동 세미나에 따르면, 조국 사태에 대한 대학가의 반응을 다룬 54%의 기사가 최상위 10개 대학에 집중되었다(임지윤, 2019). 구체적인 숫자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문화일보 창간 28주년 여론조사에서 "학력이 올라갈수록 성과주의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장병철, 2019), "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 일부 학생들만 불공정성에 크게 반응하는 양상"(손기은, 2019)이 있다는 사회학계의 코멘트도 나왔다. 그렇다면, 소위 '20대 남자 현상' 을 이해하는 첫 열쇠는 고학력자의 심리에 있을지도 모른다.

고학력자의 심리적 특징을 하나의 용어로 줄이면 무엇이 될까? 심리학과 학부 수준에서는
자기통제(self-control)를, 석사 이상의 대개의 연구자들은 장기적 목표추구(long-term goal pursuit)를 꼽을 것이다. 학업성취, 자격증, 취업 등은 모두 장기적 추구의 대상이 되는 목표들이다. 장기적 목표추구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은 대략 3가지이며,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던 저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에 각각을 대입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통제 이론이 있다. 여기서는 당장의 마시멜로를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지각하는 아동이 그것을 오랫동안 참아낸다고 본다(Metcalfe & Mischel, 1999). 둘째, 보상적 통제감 이론이 있다. 여기서는 미래의 마시멜로 2개를 얻기 위한 요건이 명확하고 구조적(well-structured)일 때 더 쉽게 참는다고 말한다(see Laurin & Kay, 2017). 셋째, 공정한 세상 이론이 있다. 여기서는 실험자가 자신을 공정하게 대하리라는 신뢰가 있을 때 아동이 오래 참는다고 설명한다(see Maes et al., 2011).

여기서 '20대 고학력 남자 현상' 에 가장 적절한 이론적 조망은 공정한 세상 이론일 것이다. 이 이론은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자증적이고 근원적인 신념(이하 BJW)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수 년에서 십수 년에 달하는 인생의 경영에 안심하고 매진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소위 '서연고' 로 불리는 고학력자들은 세상이 "남들 놀 때 공부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는 형평성(equity)의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BJW를 갖고 있으며, 그 신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십수 년째 투자해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으며 산다는 인식(자기-BJW)은 미래의 목표성취에 대한 확신을 증가시키는 한편, 세상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굴러간다는 인식(타인-BJW)은 피해자 비난 및 사회적 약자를 낙인찍는 등의 역기능을 증가시킨다(Begue & Bastounis, 2003; Hafer, 2000; Strelan & Sutton, 2011; Sutton & Winnard, 2007). 따라서 20대 고학력 남성들의 자기-/타인-BJW가 둘 다 높다면 장기적 목표추구 성향과 형평성에 대한 요구가 모두 설명될 수 있다.

공정성 논쟁을 둘러싼 20대 남성들의 날선 반응은, 형평성이 그들에게 있어 장기적 목표추구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 중
에서도 더 많은 '인생의 판돈' 을 걸었던 고학력자들은 더욱 격분할 것이다. 대개 20대는 투자는 많되 상환은 적은 시기이므로, 자신의 오랜 금욕적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기도 전에 허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물론 논의의 정교화는 필요하다. 가령, 왜 하필 남성들만인가? 20대 고학력 여성들은 BJW가 아닌 자기통제 이론이 더 적합할까? 또한, 사적 이익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는가? 이미 PSAT에 합격했다면 박성민 청년비서관에게 악감정이 없을까? 이미 의사면허를 취득했다면 조국 사태는 어떻게 보일까? 개인적 이해득실이 더 결정적이라면, 이들은 별다른 격분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BJW가 더 중요하다면, 이들이 결혼·보육·주택청약 등의 또 다른 장기적 목표추구에 골몰하는 한, 해당 이슈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손기은 (2019.10.31.). "중요한 결정 이뤄질 때 혈연·지연·학연 작용" 83.3%. URL: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03101070421081001
신진욱 (2021.06.06.). '청년은 이렇다'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URL: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663
이준석 (2019). 공정한 경쟁: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묻다. 나무옆의자.
임지윤 (2019.12.14.). 이기적 언론의 '청년 분노 이용법': 언론학회·기자협회 세미나 '젊은 세대가 본 조국 보도'. URL: http://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522
장병철 (2019.10.31.). "내 능력·노력에 비해 보상받는 소득 적다" 57.7%. URL: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03101070403024001
Begue, L., & Bastounis, M. (2003). Two spheres of belief in justice: Extensive support for the bidimensional model of belief in a just world. Journal of personality, 71(3), 435-463.
Hafer, C. L. (2000). Do innocent victims threaten the belief in a just world? Evidence from a modified Stroop task.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9(2), 165-173.
Laurin, K., & Kay, A. C. (2017). The motivational underpinnings of belief in God. In J. M. Olson (Ed.),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Vol. 56, pp. 201-257). Academic Press.
Maes, J., Tarnai, C., & Schuster, J. (2011). About is and ought in research on belief in a just world: The Janus-faced just-world motivation. In E. Kals & J. Maes (Eds.), Justice and conflicts: Theoretical and empirical contributions (pp. 93-106). Springer.
Metcalfe, J., & Mischel, W. (1999). A hot/cool-system analysis of delay of gratification: Dynamics of willpower. Psychological review, 106(1), 3-19.
Strelan, P., & Sutton, R. M. (2011). When just-world beliefs promote and when they inhibit forgivenes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50(2), 16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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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ead through lenses of justice: The relevance of just‐world beliefs to intentions and confidence in the future.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6(3), 649-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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