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룰에 대해서 남녀는 각각 어떤 태도를 보일까? 2018년 미투 운동 이후로 정립된 대중적인 상식은,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더 펜스 룰에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적 관점의 저술가들도 동일한 인식을 공유하며, 일부는 "그들은 … 남성을 고발하는 여성들에 대해 '펜스룰' 이라는 방식으로 일종의 '복수' 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소곤, 2018)고 인식한다. 그러나 데이터는 이런 '남성만의 펜스 룰' 가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한국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이성택, 2018) 펜스 룰의 필요성에 대해서 남성들은 44.8%가 동의했는데, 여성들 역시 46.3%나 동의를 표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초점은 펜스 룰이 이처럼 남녀 모두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지 사회심리학적으로 접근하고, 그리고 펜스 룰보다 더 바람직한 전략이 무엇일지를 이론에 비추어 논의하는 것이다.

집단 간 접촉 이론(intergroup contact theory)에 따르면(Pettigrew & Tropp, 2013; Vezzali & Stathi, 2016; for a review, Pettigrew, 1998) 여러 사회적 집단들은 상호 접촉을 통해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 긍정적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이론의 핵심 질문은 단순히 '접촉은 좋은가?' 가 아니라 '어떤 접촉이 좋은가?' 에 맞춰져 있다. Pettigrew & Tropp(2008)의 대규모 메타분석 결과는 두 가지 중요한 가늠자를 제시한다. 첫째는 불안(anxiety)이라는 정서다. 불안이 심한 상황에서 어울릴수록 그 어울림은 부정적으로 여겨지게 되고, 불안은 어울림의 긍정적 효과를 가장 크게 감소시킨다(Z=-26.55). 둘째는 감정이입(empathy)이다. 상대방이 지금 어떤 마음을 느끼고 있을지를 함께 느끼면서 다가간다면 그 어울림은 긍정적이게 된다(Z=-12.43).

이제 이 두 가지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을 진단할 수 있다. 펜스 룰이 남녀 모두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은 남녀 모두가 상대방 성별과 어울릴 때 극심한 불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만에 하나 여성이 악의를 품었을 때 자신의 무고함이 법적으로 인정받기 힘들다고 생각하여 불안해한다. 한편 여성은 남성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겪게 될 성적인 가해나 구조적 억압을 예상하고 불안해한다. 접촉이 이렇게나 부정적이니, 접촉 자체를 단념하는 펜스 룰이 남녀 공히 인기를 끄는 것이다. 하지만 집단 간 관계는 긍정적 접촉으로써 개선될 수 있다(Pettigrew, 1998). 남성들은 여성들의 불안해하는 마음을, 여성들은 남성들의 불안해하는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느끼고 이해할 때, 남녀 모두 젠더의 전쟁터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부정적 접촉 상황에서는 펜스 룰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갈등을 끝내려면 남녀가 긍정적 접촉을 경험해야 한다. 처방을 위한 논의는 다행히 이미 무르익어 있다. 사회심리학계에서 집단 간 접촉 이론이 개발되고 확장되며 설득력을 갖춰 온 역사는, 서로가 어울리는 상황이 긍정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요소들을 찾는 역사와도 같았다. 따라서 집단 간 접촉 이론을 활용할 경우, 남녀가 서로에게 느끼는 불안을 줄이고, 서로의 감정을 헤아리는 가운데 접촉하라는 처방이 나온다. 다시 두 문장으로 정리하자. "마음이 통하는 어울림은 펜스 룰보다 명백히 더 바람직하다. 그러나 펜스 룰은 불안 속의 어울림보다는 더 바람직한 것처럼 여겨진다." 펜스 룰이 나쁘다는 주장을 하려면, 앞의 두 문장을 먼저 유념해야 원론적이고 비생산적으로 숟가락만 얹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소곤 (2018). 미투에 펜스룰로 대응하는 이들의 속마음: 왜 가해자에게 함께 분노하지 않는가. URL: https://brunch.co.kr/@cats-day/123
이성택 (2018.04.05.) 여성 절반 가까이 "펜스룰 지지"…
남녀 경계심 커졌다. URL: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4050458345555
Pettigrew, T. F. (1998). Intergroup contact theory. Annual review of psychology, 49, 69-85.
Pettigrew, T. F., & Tropp, L. R. (2008). How does intergroup contact reduce prejudice? Meta-analytic tests of three mediators.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38, 922-934.
Pettigrew, T. F., & Tropp, L. R. (2013). When groups meet: The dynamics of intergroup contact. Psychology Press.
Vezzali, L., & Stathi, S. (2016). The present and the future of contact hypothesis, and the need for integrating research fields.
In L. Vezzali, & S. Stathi (Eds.), Intergroup contact theory: Recent developments and future directions (pp. 1-7). Routledge.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