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우리는 갈등의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전웅빈, 임주언, 박세원, 2020) 2018년 이후 한국사회의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졌다는 진술에 응답자의 73.4%가 동의했다. 한편 중앙일보 특별취재에서도(정종훈, 백희연, 편광현, 박건, 2021) 최근 1년 간 혐오표현을 접한 적 있다는 응답이 68.2%에 달했으며, 혐오로 인해 사회갈등이 심해질 거라는 응답은 무려 83.9%로 나타났다. 이 정도의 비율 데이터는 '누구는 겪고 누구는 겪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적 갈등의 전쟁터 속에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당연히 전쟁터에서 행복한 사람은 없다. 갈등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처방은 무엇인가?

사회적 갈등의 전쟁터에서 행복을 찾는 첫째 방법은, 그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것이다. 사회 운동(activism)의 시각에서는 불평등과 부조리가 먼저 종언을 고해야 사회적 행복이 도래한다고 본다. 운동가들은 어서 빨리 싸워 이겨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의 품에 안기라고 독려할 것이다. 여성이슈에서 이런 관점을 취했던 Firestone(1970)에 따르면, 인간사는 그 자체로서 대립의 정치학으로 귀결된다. 같은 해에 캐롤 하니쉬(C.Hanisch)가 외쳤던 슬로건,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는 행복조차 개인적인 가치가 아니라 집단의 투쟁목표가 됨을 시사한다. 이들은 피압제자의 행복이란 압제자의 행복을 전복시킨 후에나 바랄 수 있는 것이며, 그 이전까지는 그저 허위의식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다른 방법으로, 사회적 갈등의 전쟁터를 떠나야 행복한 사람들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 사회심리학의 자기범주화 이론(이하 SCT)에 따르면(Turner, Hogg, Oakes, Reicher, & Wetherell, 1987), 전쟁터의 모두가 자신을 전사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SCT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을 자기개념에 반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해한다. 내 자신이 여성, 노동자, 혹은 정치적 보수주의자라는 사실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데 현저(salient)한 사람들만이 전사로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사회적 갈등의 전쟁터 한가운데에 놓였다 해도, 이를 남의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 전쟁터를 떠나야만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까지 '남의 전쟁' 의 최전선에 서게 되는 건 불행하다.

갈등의 시대 속에서 행복하기 위한 두 가지 처방 중에, 우리는 어느 하나만 내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회심리학적 시각은 사회 운동가들에게 종종 "나이브하다" 는 비난을 받는다.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이들 '전사' 들에게, 전시이탈을 하라는 처방은 나이브함을 넘어 아예 나약함으로 비칠 것이다. 싸우기도 전에 다들 도망치면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겠는가? 다행히 SCT는 전사들을 위한 희망적 예측도 내놓고 있다. 범주화의 양상은 안정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이다(Onorato & Turner, 2004). 탈영병들이 다시 전장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전사들과 어깨를 다시 나란히 하고 싸운다면, 이제 그들에게는 그것이 행복이다. 사회심리학은 단지, 모두의 처지를 고려하는 처방을 할 뿐이다.



전웅빈, 임주언, 박세원 (2020.12.10). "편가르기 3년... 정치가 사회 갈랐다" 국민일보 창간 32주년 여론조사. URL: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8811
정종훈, 백희연, 편광현, 박건 (2021.07.18.). 혐오, 마음을 집단 감염시켰다. URL: https://news.joins.com/article/24108120
Firestone, S. (1970). The dialectic of sex: The case for Feminist revolution. William Morrow & Co.
Onorato, R. S., & Turner, J. C. (2004). Fluidity in the self-concept: The shift from personal to social identity.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34(3), 257-278.
Turner, J. C., Hogg, M. A., Oakes, P. J., Reicher, S. D., & Wetherell, M. S. (1987). Rediscovering the social group: A self-categorization theory. Basil Black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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