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에 공정의 개념이 이슈가 되고 있다. 《공정한 경쟁》(2019)을 저술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21년 6월 11일 당대표 선거에서 당선됨에 따라, 대한민국 제도권에서 공정을 고찰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 논의의 장에 이준석 대표뿐만 아니라,《공정하지 않다》(박원익, 조윤호, 2019), 《능력주의와 불평등》(홍세화, 2020), 《K를 생각한다》(임명묵, 2021) 등 논객들이 여러 저술을 앞세워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다양하고 풍부한 이론들을 동원할 때 그 논의도 생산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따라서 논객의 공급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논의를 위한 지적 자원의 공급이라 하겠다.

먼저, 논의에 필요한 지적 자원은 기존에 존재하는 이론적 인식의 틀을 탐색함으로써 얻어진다. 어떤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공정 이슈를 설명할 수 있는가? 공정을 경제적 문제로 환원하여 일자리 많이 만들면 다 해결된다고 인식할 수도 있지만, 공정은 그저 명분에 지나지 않고 그 본질은 파워 게임이라는 관점을 따를 수도 있다. 이처럼 지적 자원의 다양성은 이론적 영역(domain)의 차이를 통해 확보된다. 또는, 공정을 개인 내면의 심리적 문제로 보거나 반대로 거시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보는 등, 이론의 수준(level)의 차이로도 다양성 높은 지적 자원들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지적 자원을 직접 창출함으로써 건설적 논의에 기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공정이라는 이슈를 해석하기 위해서 먼저 그 이슈에 참여하는 공중의 인식을 빌릴 수 있다. 심층면접법(IDI), 초점집단면접법(FGI)과 같은 도구들은 타당한 이론의 개발을 위한 기초가 된다. 다른 방법으로, 서사연구나 특히 생애사연구를 해석의 도구로 활용할 경우에는 공정의 개념을 이슈 참여자의 관점에서 서사적이고 생생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기존의 이론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과 유리되어 공정 개념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중요성이 크다.

공정 논의의 장에 참여하는 논객들에게 지적 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은 사회과학도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이론을 소개하거나, 적합한 이론이 없을 경우 직접 이론을 개발할 수 있다. 논의의 장에서 지적 자원의 소비자인 논객들만 증가하고 공급자인 사회과학도들은 활동하지 않는다면, 그 논의의 장은 헛돌거나 심지어는 황무지가 될 수 있다. 가능한 한 다양하고 풍부한(diverse and rich) 관점·시각·접근·인식·이론들을 제시함으로써, 사회과학도들은 공정 논의의 장이 활기차게 되고 흥미진진한 성과를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원익, 조윤호 (2019). 공정하지 않다: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 지와인.
이준석 (2019). 공정한 경쟁: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묻다. 나무옆의자.
임명묵 (2021). K를 생각한다: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사이드웨이.
홍세화 (2020). 능력주의와 불평등: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교육공동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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