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짤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MAGA 모자를 쓴 트럼프 지지자가 2019년 홍콩 시위 때의 방화를 보면서는 환호하더니, 2020년 조지 플로이드 흑인 시위 때의 방화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의 침해라며 분개한다는 것이다(그림 1). 시위는 기성 체제의 정당성과 권위에 도전하고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협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특히 방화와 무질서가 동반된) 시위를 비난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익숙하다. 그런데 이 짤방에서 시사하듯, 어떤 종류의 시위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비난받지 않는다. 심지어는 단순한 관망을 넘어서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도덕적 기반 이론(이하 MFT)에 따르면(Graham, Haidt, & Nosek, 2009),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도덕성 판단을 할 때 서로 다른 가치의 기반에 근거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어떤 시위가 타인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정함을 추구한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보는 반면, 보수주의자는 그 시위가 만약 내집단을 배신하거나, 권위를 짓밟거나, 인간의 고귀함을 더럽힌다면 도덕적 비난을 하게 된다. 따라서 MFT는 왜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보다 시위에 반감을 더 많이 드러내는지 설명한다. 시위는 국가에 대한 배신이요 체제에 대한 전복 행위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충성하고 기성 체제를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에서 시위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회적 정체성 이론(이하 SIT)의 프레임워크는 어째서 보수주의자들이 그들의 도덕적 가치에 어긋나는 시위를 지지하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Mummendey & Schreiber, 1983), 사람들은 긍정적인 내집단 독특성을 확인하고 싶어하며, 내집단과 외집단의 차이로부터 내집단의 우월성을 발견한다. 즉 부도덕해 보이는 시위에 보수주의자들이 찬사를 보내려면, 적어도 그것이 외집단의 시위여야 한다. 그들은 외국의 시위대를 지지하는 동안 심리적으로는 자국의 체제와 질서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SIT는 우리의 판단에 도덕적 가치가 무조건 적용되는 게 아니라 내집단의 독특성 여부도 중요하게 관여함을 암시한다.

우리는 가치에 충실하려는 한편으로 긍정적인 내집단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에도 충실하려 한다. 이는 국내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비난하는 것은 그것이 심리적으로 신군부의 권위라는 가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MFT). 그러면서도 그들이 홍콩·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심리적으로 내집단의 긍정적인 면을 확증하기 때문이다(SIT). 이런 상호작용이 경험적 연구로 확인된다면, 안국동 태극기 집회나 미국 국회 점거 사건 같은 내집단의 무질서한 시위를 긍정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진보주의자들도 때때로 진영논리에 의해 가치를 저버리게 될 것인지가 그 다음 연구문제가 되리라 본다.



Graham, J., Haidt, J., & Nosek, B. A. (2009). Liberals and conservatives rely on different sets of moral foundat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6(5), 1029-1046.
Mummendey, A., & Schreiber, H. J. (1983). Better or just different? Positive social identity by discrimination against, or by differentiation from outgroups.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13(4), 389-397.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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